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니발 바르카 (문단 편집)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한니발고화질.jpg|width=100%]]}}} || || {{{-1 세바스티앙 슬로트[* Sébastien Slodtz. 생몰년: 1655년 ~ 1726년. [[프랑스]]의 조각가로, [[베르사유 궁전]]의 조각을 담당한 궁중 예술가였다. 이 작품도 원래는 베르사유 궁전의 장식용으로 제작되었다.] 作, [[1704년]]. [[루브르 박물관]] 소장}}}[* 왼손으로는 전리품으로 챙긴 수 많은 로마군의 반지를 쥐고 있으며, 오른손으로는 카르타고군이 노획한 로마 군단기를 한니발이 거꾸로 든 모습이다. 독수리 장식을 단 군기는 [[로마군|로마 군단]]의 절대적인 상징이었다. 즉, 한니발이 노획한 군기를 거꾸로 들고 독수리 장식을 땅바닥에 처박은 것은 로마군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었다. 한니발의 조각 바로 옆에는 다름아닌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 고대 [[고대 카르타고|카르트 하다쉬트]](= [[카르타고]])의 [[장군]]. [[세계사]]에서 [[카르타고]]를 대표하는 위인이자 '''전투 코끼리를 이끌고 [[알프스]]를 겨울에 등반하는 업적을 세운 [[명장]]'''으로, 조국 카르타고를 꺾은 강대국 [[고대 로마|로마]]를 소수의 [[용병]]만으로 연파해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로마 최대의 숙적(nemesis)'''이자 공포의 대상이었다. [[로마인]]들이 우는 아이를 나무랄 때 하는 말이 "자꾸 울면 한니발 아저씨가 잡아간다?"였다. '''사실상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주인공'''으로 제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 바르카 혼자서 철천지 원수 로마의 멸망을 목표로 기획하고 수행한 것이나 다를 바 없어 다른 이름으로 '''한니발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조국 카르타고의 전략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한니발의 알프스 등반|알프스 산맥을 넘는 과감한 전략]]으로 [[이탈리아]] 본토로 쳐들어가 전설적인 활약으로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그러나 끝내 로마를 멸망시키지는 못 했고 결국 로마의 장군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게 [[자마 전투]]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카르타고는 패전했음에도 그는 지금까지도 [[명장]]으로 칭송받는다. 전쟁 결과와 별개로 그의 뛰어난 지휘력과 전설적인 전과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대의 적국이었던 로마도 그를 명장으로 칭송했다. 무엇보다도 한니발에게 호되게 당하면서 보병과 기병의 유기적 운용을 뼈저리게 습득해 군대에 보급한 로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중해의 강대국들을 모조리 쓰러트리는 군사강국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한니발은 본인의 의도와 달리 로마의 성장에 누구보다도 많이 기여한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오늘날 그의 조국인 카르타고, 그가 싸운 포에니 전쟁, 그를 꺾은 스키피오는 거의 몰라도 '''한니발과 알프스 원정은 아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그의 명성은 이어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